일을 놓은 후에도 나는 왜 여전히 바쁘게 사는가?

일을 놓고 나면 한결 여유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매일 반복되는 업무 보고서나 일정 마감 걱정도 없어지니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은퇴 후의 삶에 들어서니 이상하게도 전보다 더 바쁘다고 느끼게 됩니다. “내 삶의 2막”에 들어서면서 겪게 된 이 작은 역설에 대해, 제가 직접 체험한 에피소드와 생각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우선, 은퇴가 주는 자유는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하루를 마치 예술 작품 그리듯 채색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큰 해방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시간 속에 들어가 보니, 그동안 일의 틀 안에서 잡혀 있던 ‘규칙성’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생활 리듬에서 벗어나니, 하루 전체가 불규칙한 시간대에 펼쳐집니다. 이때 오히려 ‘자유로운 생활’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늦잠을 자고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기에 마음 편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있고, 그제야 식사를 준비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면 ‘하루 절반을 그냥 흘려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이상한 초조함이 스며듭니다. 그리고 어느새 이런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책을 읽고, 카페에 가고, 자원봉사처를 알아보기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면 TV를 틀어놓고 인터넷을 뒤적이는데, 그 모든 활동이 무척 바쁘게 돌아갑니다. 예전처럼 회사 일이 아니더라도, 제 스스로 채우려 하는 활동들이 꽤 많아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에 ‘언젠가 해보겠다’고 적어두었던 버킷리스트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해외여행 가기, 악기 배우기, 글쓰기, 운동 습관 잡기, 사회공헌 활동 등등… 몇십 년 동안 머릿속 어딘가에 잠재해 있던 희망 사항들이, 막상 은퇴 후에 마주치니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시도하려다 보니, 한날한시에 이것저것 하다가 쉽게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은퇴 직후에 겪었던 그런 갈팡질팡이, 저에겐 일상에서 흔히 겪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이토록 바삐 움직이는 이유는, 본래 활동적이고 뭔가에 열정을 쏟는 성향도 있겠지만, 더 깊은 층에는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점입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직급, 역할, 책임’이라는 명확한 틀이 있었습니다. 그 틀 안에서 제 가치는 상대적으로 명료했습니다. 상사가 원하는 성과를 내고, 동료에게 인정받고, 월급이 끊임없이 들어오며, 제 실적을 통해 의미를 얻곤 했지요. 그런데 직장의 이름표를 떼어낸 순간,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에게서 찾아야만 합니다.

이 ‘나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려는 욕구’가, 제 2막을 더욱 바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취미나 배움에 열심히 뛰어들고, ‘이것도 한번 해볼까? 저것도 배워볼까?’ 하며 다양한 영역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느끼는 몰입의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큰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요즘 새롭게 시작한 것은 아침마다 걷기 운동을 30분 이상 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하루 조금은 걸어야지”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막상 실제로 해보니 매일 걸으면서 햇살을 느끼고, 들리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제 하루의 시작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집중해서 걸으면서 머릿속을 비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은 몰입이 제게 심리적 안정감과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죠.

또 한 가지는, 은퇴 후에는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너무 다양하고 자유롭다 보니, 갑작스러운 변화나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도 자주 생긴다는 점입니다. 가령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 대부분이 직장이라는 고정된 공간에서, 정해진 업무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누군가가 저에게 전화만 하면 저는 쉽게 ‘가능한 사람’이 됩니다. 예를 들어, 동네 주민 모임에서 어떤 행사가 있으면 “집에 계시죠? 혹시 도울 수 있나요?”라는 연락이 올 수 있고, 지인들이 모이는 동호회나 작은 프로젝트 모임이 있으면 “같이 해볼래요?”라는 권유가 들어옵니다. ‘시간이 있지 않느냐’는 말 한마디면 결국 제가 쉽게 OK해버리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스케줄이 가득 차다 보니,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바쁜 일정표를 확인하는 날도 생기게 됩니다.

결국, 제 삶의 2막은 ‘자유로우면서도 오히려 바쁘게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바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발견합니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구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이렇게나 남아 있구나.” 이런 깨달음은 과거에 매어 있던 시절에는 얻기 힘들었던 새로운 통찰입니다. 거기서 오는 희열은 의외로 큽니다. 물론, 가끔은 “너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자문하며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다독이게 됩니다. 그렇게 ‘멈춤’과 ‘도전’을 반복하며 조금씩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요즘에 제가 더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이 2막의 삶에서 마주친 다양한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직장 시절에는 종종 ‘일이 우선이고, 내 삶은 뒷전’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선택한 일들로 채워지는 만큼, 더 애착이 생기고 책임감도 생기는 듯합니다. 대신 그만큼 바빠지니, 의도적으로 휴식 시간을 만들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예 스케줄 없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날만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분히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지난 한 주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 더 나다운 삶으로 다듬어가는 것이 2막의 큰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이켜 보면, 은퇴 이후의 삶이 이렇게 분주한 것은 결코 부정적인 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일을 떠난다’는 표현보다는 ‘또 다른 일을 찾았다’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고 느낍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선택한 활동에 몰입하며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은, 예전보다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직 내게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구나’라는 긍정적인 확신을 얻습니다.

만일, “은퇴 후에는 한가해져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 때문에 내가 왜 이토록 바쁜지를 스스로 탓하고 있다면, 조금 시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 여러 가지를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설적인 과정일 수 있습니다.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 혼란스러움을 겪는 순간도 결국에는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됩니다. 몰입의 즐거움,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감, 새로운 도전에서 오는 성취감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이전엔 몰랐던 행복을 느낄 때가 분명히 찾아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삶의 2막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얻고 싶은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 고민은 그냥 책상에 앉아서는 잘 풀리지 않습니다. 조금씩 움직여 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낯선 걸 시도해보면서 내 속에 숨어 있던 욕구와 흥미, 잠재력을 마주하게 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길이 보입니다. 그 길 위에서 실수도 하고, 순간적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과거보다 훨씬 풍부한 감정을 느낍니다.

“일을 놓은 후에도 왜 여전히 바쁘게 사는가?”라는 물음에, 저는 “새로운 의미와 몰입을 찾는 과정”이라는 답을 내렸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얻는 성찰이 크고, 그로 인해 삶에 대한 감사와 열정이 더 깊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삶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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